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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군 남면 광천리 남한강 상류에는 삼면이 강물로 둘러 쌓이고 아름드리 노송이 우거진 육지속에 작은섬이 있다. 이곳 청령포는 수려한 절경으로 인해 관광객의 매일같이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지만, 청령포에 얽힌 단종의 비화를 아는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청령포는 조선 제6대 왕인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상왕으로 있다가, 그 다음해인 1446년 성삼문 등 사육신들의 상왕복위의 움직임이 사전에 누설됨으로써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중추부사 노득해가 거느리는 군졸 50인의 호위를 받으며 원주, 주천을 거쳐 이곳 청령포에 유배되었 한다.

청령포는 동, 남, 북 삼면이 물로 둘러싸이고 서쪽으로는 육육봉이라 불리는 험준한 암벽이 솟아있어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밖으로 출입할 수없는 마치 섬과도 같은 곳이다. 단종은 이 적막한 곳에서 외부와 두절된 유배생활을 했으며, 당시에는 이곳에 거처할 수 있는 집이 있어 호장 엄흥도는 남몰래 밤이면 이곳을찾아 문안을 드렸다고 전한다.

그 해 뜻밖의 큰 홍수로 강물이 범람하여 청령포가 물에 잠기게 되니 단종은 영월 동헌의 객사로 처소를 옮겼다. 지금 청령포에는 단종 유배시에 세운 금표비와 영조때 세운 단묘유지비가 서있어 아련한 600년전 옛일을 전하고 있다. 또한 망향탑, 노산대, 관음송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2008년 12월 국가지정 명승50호로 지정되어 있다

예전에는 이 강을 건너려면 작은 나룻배를 타고 관광객들이 건넜으나, 요즘은 매일같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관광객들이 쉽게 강을 건거게 하기위해 동력선 2대가 수시로 강을 오가고 있다.

강을 건너 나루에 도착하면, 드넓은 강변에는 둥글둥글한 조약돌이 쫘악 깔려있는 자갈밭이 나온다. 이곳을 한참동안 걷노라면 달가닥 달가닥 자갈이 부딧치는 발자욱 소리를 들으면서 걸어보는 새로운 체험을 하게된다.

영월군 남면 광천리 청령포에 위치한 이 수림지는 수십 년에서 수백 년생의 거송들이 들어 찬 수림지로 단종의 유배처를 중심으로 주위에 울창한 송림을 이루고 있다.

청령포는 국가지정 명승 50호로 관리되고 있으며, 현재 이곳에는 단종어소, 관음송, 망향탑, 노산대, 금표비등 600년 역사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당시 청령포에서 유배생활하던 단종의 슬픔이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우거진 송림 사이로 오른쪽에는 담장이 둘러쳐진 단종어소가 보이고, 왼쪽에 작은 행낭채는 궁녀들과 관노가 기거하던 행낭채가 보인다. 단종어소는 승정원 일기의 기록에 따라 기와집으로 그 당시의 모습을 재현했다.

어가에는 당시 단종이 머물던 본 채와 궁녀 및 관노들이 기거하던 사랑채가 있으며, 밀납인형으로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가 담장 안에 유지비각이 위치해 있다

이 비는 총 높이 162cm로 밑으로 1단의 화강석 비좌 위에 오석으로 된 비신을 세우고 전면에는 「端廟在本府時遺址」(단묘재본부시유지)라 새기고 측면에는 「皇命崇禎戊辰紀元後三癸未季秋泣涕敬書 令原營 石」(황명숭정무진기원후삼계미계추읍체경서 영원영수석)이라 기록되어 있다. 이 비석은 전면 측면 각 1간의 비각안에 보존되어 있다.

관음송은 청령포수림지에 위치하고 있는 소나무로 단종 유배시의 설화를 간직하고 있으며 1988년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지정되어 있다. 단종이 유배생활을 할 때는 두 갈래로 갈라진 이 소나무에 걸터앉아 쉬었다는 전설이 있다. 또한 단종의 유배 당시 모습을 보았으며(觀), 때로는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다(音)는 뜻에서 관음송(觀音松)이라 불리어 왔다.

관음송을 한바퀴 돌아보고 이번에는 육육봉이라는 산이 있는 방향으로 올라서면, 하늘까지 닿을듯한 가파른 목제계단이 우거진 수림사이로 보인다. 가파른 계단길을 한참 오르면 망향탑이 있고, 최정상에는 전망대가 나온다.

망향탑은 청령포 뒷산 층암절벽 위에 있는 탑으로 단종대왕이 유배생활을 할 때 자신의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근심속에서도 한양에 두고 온 왕비 송씨를 생각하며 여기저기 흘어져 있는 막돌을 주워 쌓아 올렸다는 탑으로 단종이 남긴 유일한 유적이다.

청령포 바로 뒷산으로 일명 刀山이라고도 하는데 청령포에서 솟아오른 암벽으로 된 이 산은 6개의 작은 봉을이루고 있어 육륙봉이라고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육륙봉은 어찌 보면 톱날과 흡사하며, 아래쪽을 내려다보면, 수직절벽아래 유유히 강물이 흐르고 있다.

이곳은 일명 노산대라고 불리는 바위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천길 낭떨어지 아래쪽에는 드넓은 강물만 유유히 흘러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단종은 이곳에서 예측할 수 없는 자신의 앞날을 근심도 하며 긴 한숨만 쉬었을 것이다.

이 비석에는 「東西三百尺 南北四百九十尺 此後泥生亦在當禁」(동서삼백척 남북사백구십척차후니생역재당금)이라 기록되어 있다. 청령포에서 동서로는 삼백 척을, 남북으로는 사백 구십 척 안에서 금표나 금송에 대한 채취 금지항목으로 일반인이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도록 하는 의미로 세워진 것이다.

청령포를 한바퀴 돌아보면 어디를 가더라도 울창한 송림이 더위에 지친 관광객들을 맞이하지만, 어린 단종의 슬픔이 곳곳에 묻어있어 옛일을 머리속에 떠올리면 더욱 애닮은 마음이 앞선다. 어린 나이에 이곳에 유배되어 한시도 자신의 앞날을 예측할수 없는 불안하고 두려웠던 그 심정을 되새겨보면 뼈속 깊이 아픔이 전해온다.

조선시대 600년전 그를 위해 목숨바친 수 많은 영혼들의 아픔은 그 누가 알아줄것인가? 정치는 무었이고 권력은 무었이었나? 세월이 흘러 점차 단종의 역사는 무정한 세월속에 묻혀버리겠지만, 청령포 노송들은 단종의 애환을 언제까지라도 영원히기억하고 있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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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남면 | 청령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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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행복한 털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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