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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소년 이승복을 기억 하십니까?
지금으로부터 40년전에 울진 삼척지구에 침투한 무장공비의 잔당들이 도주하다가 강원도 평창군의 계방산 기슭의 외딴 산속에 살고있는 이승복의 집으로 처들어와 일가족을 모두 무참하게 살해한 사건이다.
이승복은 1959년 12월 9일 평창군 진부면 노동리 계방산 기슭의 목골재 아래에서 화전민인 가난한 농부 이석우씨의 3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나 부모님의 극진한 사랑속에 자랐다.1967년 3월 5일 속사국민학교 계방분교에 입학하여 6km의 산길을 따라서 학교에 다니던 어린이였다.

1968년 12월 9일 호롱불 밑에서 숙제를 하는 승복군 앞에 나타난 울진 삼척지방에 침투한 무장공비들의 잔당들이 나타나 느닷없이 총칼을 들여대고 교활한 말을 하자 "아저씨는 거짓말장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라고 대들다가 어머니와 누이동생과 함께 끌려 나가 살인마 공산당들에게 무참히 찢기고 찔리고 짓밟히어 아홉살의 어린이가 무참히 학살당한 사건이였다.필자도 그 당시 그와 비슷한 나이에 그곳으로 부터 멀지 않은 지역에 살고 있었던 어린이 였음으로 그당시 경황을 마음속깊이 간직하고 있었지만 기회가 없어 가보지 못했는데 40년의 세월이 흘러서 우연한 기회에 이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승복 생가는 아랫마을로 부터 약 4km떨어진 외딴 산속에 살고 있었으며,이곳에서 화전을 일구어 옥수수 농사를 짖던 화전민들이 살고 있는 전형적인 토방집에 살고 있었다.

생가는 복원되어 있지만 산길을 따라서 10리길에는 민가도 없이 외딴곳에 있지만 그래도 계방산을 찾는 등산객들이 주로 많이 다니는 등산로 주변이라 많은 사람들이 돌아볼수 있다.

사건직후 이승복 생가는 흉가처럼 썰렁하게 방치되어 있다가 1970년 화전민 철수사업이 진행될때 철거하고 돌담장만 남았었다 한다. 그후 오랜 새월이 30여년이 흘러간 2000년 시네에스트에서 이승복 일대기 영화를 촬영하기 위하여 당시 생존자들의 증언과 사고당시 사진등의 고증을 거쳐서 이마을 강규혁씨에게 용역을 주어서 복원하였다한다.

집의 구조는 화전민들의 전형적인 목조 귀틀집으로 안방,웃방,부엌,외양간,뒷간으로 방의 크기는 8자크기라 살림살이 비치하면 발도 똑바로 뻗지 못할정도의 크기였다.

마당가의 한쪽편에 있는 뒷간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사용하는지 의문이 간다.

이승복 생가를 돌아보고 산길을 따라서 4km 정도 걸어서 내려오니 조그마한 시골마을 집단부락이 있고, 여기서 2km가량 차로 하산하면 이승복 기념관이 있었다.

이승복 기념관 구역에 들어서니 입구에 이승복 동상이 있고,바로 옆쪽으로 이승복의 생가를 똑같이 복원되어 있어서 산속에서 보던 생가와 똑같은 복제판이 있다.

좌측으로 부터 외양간,부엌,안방,웃방의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외양간의 안쪽에는 여물을 먹을수 있도록 여물통이 길게 놓여져있다.

부엌의 구조는 아궁이 위에 가마솥, 밥솥, 국솥  3개가 나란히 비치되어 있다.

안방을 들여다 보니 방바닥에 짚자리가 깔려있고 화로와 다듬이돌,옷장,밥상이 비치되어 있다.

웃방으로 통하는 통로가 보이며, 목제를 우물정자로 쌓아서 벽에 흙을 발라서 만들었다.

방에는 옷장과 옷장위에 올려 놓은 이불이 보이고 그 옆 쌀독이 보인다.

웃방 옆에는 굴뚝주변에 각종 농사에 쓰이는 농기구들이 벽에 걸려있다.

이 곳에는 이승복 기념관 일대에는 기념관,일가 묘소, 동상, 살던 집모형, 6.25참전장비 및 자연학습장을 갖추고 있고,특히 1992년 4월 개관한 자연학습관실은 잼버리 자연학습장을 옮겨다 놓은 것으로, 많은 학생들이 자연학습관의 산실로 이용하고 있어 기념관의 새로운 명소로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전시관 안쪽으로 들어가는 입구

이승복의 생애

이승복의 영정

전시관 안쪽에는 이승복 일대기와 각종 많은 자료들이 사방으로 비치되어있다.

1998년에 폐교된 이승복이 다니던 속사초등학교 계방분교

"공산당이 싫어요"란 말 한마디에 무참하게 입이 찢겨 어린 나이에 죽은 이승복 어린이 이야기는 오랫동안 이 기사를 취재한 신문사와 벌인 법정공방도 오랫동안 있었지만, 이곳은 오지중의 오지, 첩첩산중의 두메 산골의가난하고 소박한 농민들이 초라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었건만,이데오르기의 희생물, 민족분단의 비극등 그 아무리 고상한 말을 갖다 붇여도 어린 아이를 칼로 입을 찢어 죽인다는 것은 좀처럼 이해가 가지않는다.

이승복기념관의 당초 설립목적은 전국민의 반공교육장이었다. 그러나 무수한 새월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안보교육장 역할을 하고 있다. 안보교육은 애국정신과 주체성 함양에 비중을 두는 것으로, 통일이 된다 하더라도 기본적인 안보의식은 필요하기 때문이라한다. 현재 이승복 기념관은 당시 사건을 되새겨 보는 전시물 및 관련 영상물 관람, 부대시설인 여러 가지 체험학습장 견학코스등으로 운영된다.하지만 40여년이 흐르는 새월동안에 새로운 정부가  바뀔때마다 이곳은 성격을 달리하여, 기념관에 사람들이 붐볐다 안 붐볐다 했다니 씁쓸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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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털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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