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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지역은 서기 1886년 병인박해 당시 수많은 교우를  붙잡아다 처형하고, 심문과 고문을 하던 곳이다. 충청·전라·경상도로 갈라지는 주요 길목인 죽산은 지리적 조건 때문에 조선 시대에 도호부가 설치되었던 곳으로, 현재 죽산면사무소 자리에서 많은 천주교인들이 참담한 고문 끝에 처형되었다한다.

이 죽산마을에서, 천주교의 4대 박해의 하나인 병인박해 때에는 수많은 순교자들이 주님을 증거하며 생명을 바쳤다. 여기에서 치명한 순교자들은 '치명일기' 와 '증언록' 에 그 이름이 밝혀진 사람만해도 25명에 이른다. 하지만 척화비를 세우고 오가작통으로 사학 죄인을 색출, 무차별하게 천주교인들을 끌어다가 처형하던 당시 상황으로 보아 순교자들이 더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죽산마을은 조선시대에는 도호부로, 뒷산 비봉산 동북쪽에는 고려 때 몽고군과 임란 때 왜적을 물리친 죽주산성이 있다. 
이 골짜기는 고려 때 몽고군이 쳐들어와 송문주 장군이 지키고 있는 죽주산성을 공략하기 위해 진을 친 장소이기도하다. 그래서 오랑캐가 진을 친 곳이라 하여 '이진터'라했다. 하지만 병인박해를 지나면서 이진터는 "거기로 끌려가면 죽은 사람이니 잊으라." 하여 '잊은 터' 로 불리게 됐다는 것이다. 

병인박해란 무었인가? 국어사전에는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조선 고종 3년(1866)에 일어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가톨릭 박해 사건. 러시아로부터 통상요청을 받은 대원군이 프랑스의 힘을 빌려 막고자 하였으나 뜻대로 안되자 카톨릭 탄압령을 내리고 아홉 명의 프랑스 선교사와 남종삼을 비롯한 팔천여 명의 가톨릭교도를 학살하였다.


# 이진터 성지 - 성지 주차장


# 이진터 성지 - 성지 진입로


# 이진터 성지 - 성지 입구


# 이진터 성지 - 성지 안내판


# 이진터 성지 - 입구에서 본 전체적인 윤곽


# 이진터 성지 - 성역 출입문


# 이진터 성지 - 순교자 묘역 계단길


# 이진터 성지 - 순교자 묘역 계단길


# 이진터 성지 - 무명순교자 묘


# 이진터 성지 - 25명의 순교자 교역


# 이진터 성지 - 묘역에 배치된 촞불 밝히는곳


# 이진터 성지 - 예수의 일생을 설명한 조형물


# 이진터 성지 - 중앙에 배치된 예수상


# 이진터 성지 - 예수의 일생을 설명한 조형물


# 이진터 성지 - 십자가를 진 예수님


# 이진터 성지 - 공원에 조성된 괴목들


# 이진터 성지 - 묘역에서 보이는 성당


죽산마을에는 두들기라는 곳이 있다. 죽산 읍내에서 15리쯤 지금은 삼죽면 소재지로 80여호가 사는 큰 마을이지만 옛날에는 인가가 드문 작은 주막거리였다고 한다. 이 주막거리는 용인, 안성, 원삼 등지에 사는 교우들이 포졸에게 잡혀 가는 호송길에 잠시 쉬어 가는 곳이 되곤 했다.

포졸들은 줄줄이 묶어둔 교우들을 툭하면 갖은 트집을 잡아 두들겨 패곤했는데 그 연유로 두들기는 두들겨 맞는 곳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또한 뒤쫓아온 가족들은 잡혀온 교우들이 두둘겨 맞는 것을 보고 땅을 두드리며 원통해 하였다. 그리하여 두둘기는 이래 저래 두들겨 맞던 곳으로, 교우들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고한다.

이렇게 죽산순교성지가 순교를 항한 "두둘기""잊은터"로 기억되는 곳이며, 주님을 향한 아픈사랑을  잘 알려주는 곳이다. 오늘날 한국의 천주교성지를 되돌아 보면, 순교의 사형장으로서의 성지는 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있는 이진터 성지 순교의 처절함이 서린 "잊은터"로 영원히 가슴에 아로 새겨질것이다.

참조된 관련 글 : org.catholic.or.kr/juksan/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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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털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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