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담사에는 아직도 스님의 흔적과 향기가 곳곳에 스며 있으며, 한국불교의 정신적 혁명을 창출한 스님의 기개와 사상을 만날수 있다. 백담사는 만해스님이 있었기에 존재한 사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해스님이 있었기에 백담사는 한국불교의 정신적 혁명의 사찰이 되었으며, 가장 아름다운 서정적 사찰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자리(화엄실)는 전두환 전대통령의 흔적으로 대신하고 있다. 사찰측이 기념하기 위해 ‘전두환 전 대통령이 기거하던 곳 입니다’라는 팻말을 붙여 놓았다. 만해 스님은 민족와 국민을 위해 그곳에서 민족의 얼을 되살리는 산고의 고통을 겪으면서 집필을 하였다면, 전두환 전대통령 부부는 이곳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 참회를 하였다.
우선 백담사 입구에서 백담사의 유래와 가람배치도가 그려진 안내판의 현판이 내설악백담사라고 한다.
백담사는 가려면 거대한 강과 같은 계곡물이 흐르는 넓은 계곡을 건너기 위해 수심교가 특색있게 놓여져있다.
수심교에서 내려다보니 백담사 앞 계곡 한쪽으로는 무수한 돌탑이 만들어져 있는데, 백담사를 다년간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쌓은 탑들이다. 백담사를 방문하면 저곳에서 자기의 소원을 탑에 담아 두고 오면될것같다.
1989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990년 9월에 완공한 거대한 돌다리 수심교를 건너면 곧바로 백담사의 정문이 금강문(金剛門)으로, 내부 좌우에 사천왕상을 봉안한곳이다.
이곳은 백담사의 두번째 문으로 예전 정문인 솟을문으로 되어있다. 사찰의 문은 보통 입구에 일주문과 부처님이 계신 도량임을 나타내는 천왕문, 내도량으로 들어서는 마지막 문인 불이문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백담사의 문은 불교적인 문의 정형을 완전히 벗어난 특이한 것이다.
가운데 극락보전을 중심으로 좌측에 화엄실과 우측에는 법화실이 배치되어 있으면, 좌측에 화엄실은 전두환대통령이 이곳에서 머물면서 참회하던 장소로 아직까지 그 흔적이 남겨져 있는곳이다.
극락보전 뒤 왼쪽에는 맞배지붕에 앞면과 옆면 1칸씩의 최근에 지은 산령각이 있다. 설악산의 산신이 그 어느 산의 산신들보다 격이 높다고 하여 ‘山神閣’이라 하지 않고 ‘山靈閣’이라 편액하였다고 한다.
극락보전 오른쪽 뒤편에 나한전이 자리한다. 잘 다듬어진 기단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겹처마에 팔작지붕 건물을 세웠다. 창호는 정자(井)살창을 짜아 각 각 사분합의 여닫이문을 달았다. 옆면에는 이분합의 문을 달아 출입을 하고 있다.
백담사의 경내 오른쪽에는 커다란 화강석으로 만든 만해 한용운 스님의 시비(詩碑)와 흉상(胸像)이 나란히 서 있다. 이 흉상과 시비를 통하여 백담사와 만해 한용운 선생의 관계를 잘 알 수 있고, 이 시비를 살피다보면 한용운 스님의 생애와 함께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시비에는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이렇게 시작되는 스님의 대표시 ' 나룻배와 행인'이 앞면에 한글로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스님의 오도송을 새겨 놓았다..
만해기념관은 ㄱ자 형태의 건물로 입구에 들어서서 우측방향으로 꺽어진 건물안쪽을 한바퀴 돌아보게된다.
산령각 왼쪽은 나지막한 담장이 둘러져 있는데, 스님들의 수행공간이자 생활공간인 만복전 만해교육관 등이 자리한다.
백담사는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2리 690번지 설악산 입구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사찰이다. 백담사를 방문하려면 일반관람객들은 국립공원관리소 주차장에 자동차를 주차하고 이곳에서 셔틀버스를 이용해서 좁고 험준한 도로를 따라서 구불구불 수십고비를 돌고 돌아 7km를 더 가야 백담사에 도착한다.
물론 험준한 도로사정과 주차장 사정도 있겠지만, 전두환대통령 은거생활 이후에 백담사가 널리 알려지면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년중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이다. 또한 설악산 대청봉을 오르는 길목이기도 하기에 등산객들과 일반관광객들이 어우러져 날씨가 좋은날은 백담사까지 셔틀버스를 이용하기도 무척이나 혼잡하다.
또한 백담사에서 내려오는 셔틀버스가 오후에는 하산하는 등산객들과 백담사 관광객들까지 한꺼번에 수백명씩 몰려들어 혼잡하기 그지없다. 또한 막차가 계절에 따라 차이가 있기 때문에 등산객들이 늦게 하산해서 막차를 놓칠경우 험준한 도로를 따라 2시간정도 더 걸어야 함으로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조금 서둘러 하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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