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리 금수강산 웅장하고 아름다운 산이 있으면 명산 자락에는 틀림없이 이름있는 사찰이 있게 마련이다. 전국에서 고로쇠 산지로 잘 알려진 광양의 백운산을 오르기 위해 선동마을을 통해서 백운사코스로 산행을 시작했다. 산행들머리에서 좌측으로는 용문사가 바로 보이고, 가파른 우측길 방향에는 백운사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산행들머리에서 백운사까지 오르는길은 제법 멀기만 하다. 골이 깊은 계곡이 내려다 보이는 산중턱 가파른 경사로를 따라 구비구비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루할만큼이나 길기만 하다. 그리고 산행 초입에 표지판 뿐이고 사찰까지 1시간 정도 걸어도 이정표하나 없으며 갑자기 굽이굽이 고도가 높아지면 백운사가 보인다.
백운사는 호남정맥에서 뻗어 나와 섬진강을 따라 달리는 백운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으며, 흰구름 사이로 솟아난 천혜의 기도처로 보조국사와 구산스님이 수행하셨던 상백운암을 비롯 백운암 하백운암을 일컬어 말한다. 이 세 암자는 보조국사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 임진왜란 때 전소 되었으며, 눌암스님과 구산스님에 의해 중건 되었다.
가파른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조금 지루하게 1시간 정도 구비구비 산길을 오르니 조금 넓은 공간이 나타나면 백운사 사찰경내로 진입하게 되며, 대웅전과 요사채 그리고 해후소가 보인다.
백운산 중턱에 자리한 백운사는 작은 규모의 사찰이며, 제일 큰 건축물이 언덕위에 우뚝 솟이 보이는 대웅전이다.
백운사 입구에는 참 특이한 건축물이 하나 보인다. 이층 규모이며, 아랫쪽은 돌담을 쌓아 올리고 두개의 커다란 사각형 환기구를 두었으며, 좌측에는 출입구가 보인다. 2층으로 올라가 보았더니, 이른바 사찰에서 말하는 해후소라는 집이다.
해후소에 들어가 좌변기 앉아서 용변을 보면 약 4~5m 깊이의 바닥으로 배설물이 털썩하고 떨어지는 구조다. 좌변기에 쪼그려 앉기 전에 아래쪽을 내려다 본 사람이라면 오금이 저려서 용변을 못보고 돌아나오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다.
대웅전 앞뜰은 공간이 워낙에 협소해서 대웅전을 광각이 부족한 카메라는 화면에 담기가 쉽지 않았다.
백운사 대웅전 특이하게도 건물에 단청이 되어 있지 않아 고풍스러우면서도 절맛이 제대로 나는 사찰로 도선국사가 절터를 잡았다는 설이 전해 오고 있으며 말년에 은거하다가 입적한 곳으로 전해진다.
백운사 대웅전이 특이하게 보이는것은 어디를 둘러보아도 단청이 전혀 되지 않아 자연스런 나무결 무늬가 살아있다.
백운사에 오르는 동곡 계곡은 백운산 4대 계곡의 하나로 산이 높은 만큼 골도 깊어 길이가 10㎞에 달한다. 계곡에는 호남의 3대 학자라는 최산두가 공부했다는 학사대를 비롯해 용소, 장수바위, 선유대 등이 아름답다. 이처럼 백운사는 계곡이 발달했을 뿐만 아니라 계곡물은 전국에서 알아주는 찻물이며 산이 험하면서도 넉넉하고 포근하다.
백운사를 비롯 상백운암 하백운암을 품고 있는 백운산은 산세에 비해 그리 알려지지 않은 산이다. 광양 백운산은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지리산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전국에 백운이란 이름을 가진 산이 수십 개에 달해 어디서 많이 들어본 고만고만한 보통산으로 인식돼 왔을 것이다.
하지만 백운사까지 숲 사이로 난 길을 올라가면 사실 알려지지 않은 만큼 보존가치가 높은 자연림을 끼고 있다. 한라산만큼 다양한 식생이 존재하며, 900종이 넘는 나무와 풀이 자라는 곳이기도 하다. 상백운암에서 시작되는 억새밭과 정상을 잇는 길. 정상도 좋지만 억불봉을 찾는 것도 백운사에서만 볼 수 있는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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