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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지방에서 남부지방까지 먼거리로 정기산행을 떠났다. 입춘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중부지방에는 춥지만 그래도 남부지방에는 싸사로운 햇살이 내릴거라고 생각하고 버스로 4시간 이동해서 부산 금정산으로 산행을 떠났다. 우리나라 전국 어디를 가던지 명산 아래의 심산유곡에는 틀림없이 이름있는 사찰이 있게 마련이다.
이번에 금정산 산행코스는 범어사를 기점으로 되어있기에 부산지역에서 크게 알려진 범어사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부산 범어사는 약 두달전 2010년 12월에 천황문 방화사건이 보도되면서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2월의 둘째주말에 범어사에 도착한 일행들은 따듯한 봄날일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찬바람이 매우 강하게 불어서 사실 눈코뜰 사이도 없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모두 방한모를 눌러쓰고 종종걸음을 치면서 오직 목표를 향해서 등산로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까지와서 부산 범어사를 답사하지 않고 돌아간다면 후회할것 같아서 일행에서 이탈해서 혼자 범어사 경내로 진입했다. 사실 사찰을 제대로 답사하려면 일주문을 통과해야 하지만 범어사의 맨 우측 끝단부인 등산로 출구에서부터 진입해서 답사를 했다.
범어사는 신라 문무왕때 의상대사가 해동의 화엄십찰중의 하나로 창건하였다. 해인사, 통도사와 더불어 영남의 3대 사찰인 범어사는 역사적으로 많은 고승대덕을 길러내고 도인을 배출한 수행사찰로 오랜 전통과 많은 문화재가 있는 곳이다.
범어사의 대표적 건물로는 대웅전을 꼽을 수 있다. 그리고 유일한 신라시대의 흔적으로는 삼층석탑이 있다. 기단의 석재가 마모돼 일제시대 때 새 석물로 교체하긴 했으나 몸통돌과 지붕돌은 신라 때 것이다. 그리고 이 곳 경내에 들어서면 천연기념물 제 176호로 지정된 등나무 군생지를 볼 수 있다.
대웅전은 1614년의 창건과 1713년의 대대적 중건을 거치면서 조선시대 중기 이전의 양식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조선시대 중기 이래의 간결하고 힘찬 다포식 건축의 양식적 특성과 뛰어난 건축 기술을 보여 주고 있어서 보물 제434호로 지정되었다.
미륵전 앞에 있는데 신라시대 후기에 조성된 삼층석탑의 높이는 약 4m이고, 상하의 2중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렸다. 하층기단은 각 면에 세 개씩의 안상(眼象)을 조각하였고, 탱주는 없다. 전체적으로 신라시대 후기 9세기의 석탑 양식을 잘 지니고 있어 보물 제250호로 지정되었다.
범어사 석등은 높이 262㎝로 심검당 앞에 있다. 복련을 조각한 원형의 하대석 위에 8각의 간주석(竿柱石)을 올리고 앙련을 새긴 상대석과 화사석·옥개석, 그리고 보주를 차례로 얹었다. 현재 일부만 남아 있지만 고려시대의 양식을 지니고 있어 부산광역시유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되었다.
대웅전 서쪽에는 1990년에 새로 건립한 지장전(地藏殿)이 있다. 절에는 본래 1657년(효종 8)에 최 씨 성을 가진 신도가 시주한 명부전이 있었다. 당시의 자리는 팔상전 앞, 지금의 서지전(西持殿) 자리였다.
보제루 북쪽에는 2층 누각으로된 종루(鍾樓)가 있다. 아침저녁에 거행하는 예불이나 의식에 사용하는 사물(四物), 곧 범종(梵鍾)·법고(法鼓)·운판(雲板)·목어(木魚)를 봉안한 건물이다.
성보박물관 앞뜰에는 7층석탑이 있으며,인도의 스님이 기증한 불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조성하였다. 3단의 기단에 7층의 높은 탑신을 세웠고, 1층 기단의 귀퉁이에 사천왕상을 놓았다. 탑의 주위에는 2단의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석재의 난간을 넓게 마련하였다.
'범어사'라는 절 이름의 유래를 '동국여지승람'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금정산은 동래현의 북쪽 20리에 있다. 금정산 산마루에 세 길 정도 높이의 돌이 있는데 그 위에 우물이 있다. 그 둘레는 10여 척이며 깊이는 7촌쯤 된다.
물이 항상 가득 차 있어서 가뭄에도 마르지 않으며 그 빛은 황금색이다. 세상에 전하는 바에 의하면 한 마리의 금빛 나는 물고기가 오색 구름을 타고 하늘(梵天)에서 내려와 그 속에서 놀았다고 하여 '금샘(金井)'이라는 산 이름과 '하늘 나라의 고기(梵魚)'라고 하는 절 이름을 지었다.
범어사는 이런 문헌이 전해지는것으로 볼때 금정산의 금샘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역시 금정산의 정기를 받은 사찰로 알려져 있다. 범어사의 가람 구조는 산지가람의 특성을 자연스럽게 살려서 가람이 잘 반영되어 있는데,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은 대웅전을 향해 대략 상·중·하 3단의 배치를 이루었다.
즉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과 불이문의 입구 구역이 하단이고, 여기서 계단을 통해 보제루에 올라서면 그 북쪽에 종루와 미륵전·비로전·금어선원 등이 있고, 남쪽으로는 심검당과 원응당을 비롯한 십 여 채의 요사가 자리잡고 있는곳은 범어사 가람에서 가장 넓은 중단구역이다.
사실 짧은시간에 넓은 공간을 돌아보려면 답사를 해도 가람의 구조가 잘 떠오르지 않았다. 범어사를 답사하려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일주문을 통과해서 가람의 하단부터 중단으로 또한 상단까지 꼼꼼하게 돌아보려면 1시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듯하다.
이번에 금정산 산행코스는 범어사를 기점으로 되어있기에 부산지역에서 크게 알려진 범어사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부산 범어사는 약 두달전 2010년 12월에 천황문 방화사건이 보도되면서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2월의 둘째주말에 범어사에 도착한 일행들은 따듯한 봄날일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찬바람이 매우 강하게 불어서 사실 눈코뜰 사이도 없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모두 방한모를 눌러쓰고 종종걸음을 치면서 오직 목표를 향해서 등산로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까지와서 부산 범어사를 답사하지 않고 돌아간다면 후회할것 같아서 일행에서 이탈해서 혼자 범어사 경내로 진입했다. 사실 사찰을 제대로 답사하려면 일주문을 통과해야 하지만 범어사의 맨 우측 끝단부인 등산로 출구에서부터 진입해서 답사를 했다.
범어사는 신라 문무왕때 의상대사가 해동의 화엄십찰중의 하나로 창건하였다. 해인사, 통도사와 더불어 영남의 3대 사찰인 범어사는 역사적으로 많은 고승대덕을 길러내고 도인을 배출한 수행사찰로 오랜 전통과 많은 문화재가 있는 곳이다.
범어사의 대표적 건물로는 대웅전을 꼽을 수 있다. 그리고 유일한 신라시대의 흔적으로는 삼층석탑이 있다. 기단의 석재가 마모돼 일제시대 때 새 석물로 교체하긴 했으나 몸통돌과 지붕돌은 신라 때 것이다. 그리고 이 곳 경내에 들어서면 천연기념물 제 176호로 지정된 등나무 군생지를 볼 수 있다.
대웅전은 1614년의 창건과 1713년의 대대적 중건을 거치면서 조선시대 중기 이전의 양식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조선시대 중기 이래의 간결하고 힘찬 다포식 건축의 양식적 특성과 뛰어난 건축 기술을 보여 주고 있어서 보물 제434호로 지정되었다.
미륵전 앞에 있는데 신라시대 후기에 조성된 삼층석탑의 높이는 약 4m이고, 상하의 2중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렸다. 하층기단은 각 면에 세 개씩의 안상(眼象)을 조각하였고, 탱주는 없다. 전체적으로 신라시대 후기 9세기의 석탑 양식을 잘 지니고 있어 보물 제250호로 지정되었다.
범어사 석등은 높이 262㎝로 심검당 앞에 있다. 복련을 조각한 원형의 하대석 위에 8각의 간주석(竿柱石)을 올리고 앙련을 새긴 상대석과 화사석·옥개석, 그리고 보주를 차례로 얹었다. 현재 일부만 남아 있지만 고려시대의 양식을 지니고 있어 부산광역시유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되었다.
대웅전 서쪽에는 1990년에 새로 건립한 지장전(地藏殿)이 있다. 절에는 본래 1657년(효종 8)에 최 씨 성을 가진 신도가 시주한 명부전이 있었다. 당시의 자리는 팔상전 앞, 지금의 서지전(西持殿) 자리였다.
보제루 북쪽에는 2층 누각으로된 종루(鍾樓)가 있다. 아침저녁에 거행하는 예불이나 의식에 사용하는 사물(四物), 곧 범종(梵鍾)·법고(法鼓)·운판(雲板)·목어(木魚)를 봉안한 건물이다.
성보박물관 앞뜰에는 7층석탑이 있으며,인도의 스님이 기증한 불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조성하였다. 3단의 기단에 7층의 높은 탑신을 세웠고, 1층 기단의 귀퉁이에 사천왕상을 놓았다. 탑의 주위에는 2단의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석재의 난간을 넓게 마련하였다.
'범어사'라는 절 이름의 유래를 '동국여지승람'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금정산은 동래현의 북쪽 20리에 있다. 금정산 산마루에 세 길 정도 높이의 돌이 있는데 그 위에 우물이 있다. 그 둘레는 10여 척이며 깊이는 7촌쯤 된다.
물이 항상 가득 차 있어서 가뭄에도 마르지 않으며 그 빛은 황금색이다. 세상에 전하는 바에 의하면 한 마리의 금빛 나는 물고기가 오색 구름을 타고 하늘(梵天)에서 내려와 그 속에서 놀았다고 하여 '금샘(金井)'이라는 산 이름과 '하늘 나라의 고기(梵魚)'라고 하는 절 이름을 지었다.
범어사는 이런 문헌이 전해지는것으로 볼때 금정산의 금샘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역시 금정산의 정기를 받은 사찰로 알려져 있다. 범어사의 가람 구조는 산지가람의 특성을 자연스럽게 살려서 가람이 잘 반영되어 있는데,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은 대웅전을 향해 대략 상·중·하 3단의 배치를 이루었다.
즉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과 불이문의 입구 구역이 하단이고, 여기서 계단을 통해 보제루에 올라서면 그 북쪽에 종루와 미륵전·비로전·금어선원 등이 있고, 남쪽으로는 심검당과 원응당을 비롯한 십 여 채의 요사가 자리잡고 있는곳은 범어사 가람에서 가장 넓은 중단구역이다.
사실 짧은시간에 넓은 공간을 돌아보려면 답사를 해도 가람의 구조가 잘 떠오르지 않았다. 범어사를 답사하려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일주문을 통과해서 가람의 하단부터 중단으로 또한 상단까지 꼼꼼하게 돌아보려면 1시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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