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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여행 1일차 경기전과 전동성당을 둘러보고나서 세번째로 찾아간 곳이 전주부성의 풍남문이다. 전주를 상징하는 전주 풍남문은 원래 전주부성의 4대문 가운데 남문으로 고려 공양왕 원년인 서기 1389년에 전라관찰사 최유경이 전주부성과 함께 창건했다. 전주부성은 지방행정의 중심지가 되는 고을을 둘러쌓았던 성을 말하는데, 부성성에는 사방으로 4대문이 있었으나 유일하게 현존하는문이 풍남문이다.

 

풍남문은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파괴된 것을 영조 10년(1734) 성곽과 성문을 다시 지으면서 명견루라 불렀다. ‘풍남문’이라는 이름은 영조 43년(1767) 화재로 불탄 것을 관찰사 홍낙인이 영조 44년(1768) 다시 지으면서 붙인 것이다. 순종 때 도시계획으로 성곽과 성문이 철거되면서 풍남문도 많은 손상을 입었는데 지금 있는 문은 1978년부터 시작된 3년간의 보수공사로 옛 모습을 되찾은 것이다.

 

풍남문을 알려면 조선시대의 역사공부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대부분 문화재들이 창건후 많은 역사의 시련속에 훼손되고 재건되고 현존하는것을 반복한다.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는 역사의 시련이 있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볍게 둘러보는 정도다.

 

 

그래도 기왕에 짧은 지식이나마 조선시대의 역사를 알려면 문화재를 꼼꼼히 보는것이 정석이다.

그런데~~ 마침 방문하던날 풍남문 입구에는 무슨 공연을 하려고 준비를 하는데~~

대형 조명탑이 설치되고 무대가 꾸며지고 대형 방송장비가 설치되고~~

 

 

안쪽으로 접근하기 쉽지 않았기에 풍남문의 외부만 가볍게 돌아보고 말았다.

공연무대가 설치된 아치형 출입구가 아마도 성문의 입구인듯한데~~

성문위에 2층누각에는 '호남제일성' 이라는 현판만 바라보면서~~

동은 성문을 중심으로 시계반대방향으로 돌아본다.

 

 

풍남문의 규모는 1층이 앞면 3칸· 옆면 3칸, 2층이 앞면 3칸· 옆면 1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다. 1층 건물 너비에 비해 2층 너비가 갑자기 줄어들어 좁아 보이는 것은 1층 안쪽에 있는 기둥을 그대로 2층까지 올려 모서리기둥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이 같은 수법은 우리나라 문루건축에서는 보기 드문 방식이다. 부재에 사용된 조각 모양과 1층 가운데칸 기둥 위에 용머리를 조각해 놓은 점들은 장식과 기교를 많이 사용한 조선 후기 건축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옛 문루건축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는 문화재이며, 현재 보물 제 308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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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털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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