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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달재의 원이름은 천등산과 지등산의 영마루라는 뜻을 지닌 이등령이 었으나 조선조 중엽 경상도의 젊은 선비 박달(朴達)도령과 이곳의 어여쁜 금봉낭자의 이루지 못한 애닯은 사랑의 전설이 회자되면서 박달재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이야기는 이렇게 전개된다.

 박달은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가던 도중 해가 저물어 어떤 농가에서 하룻밤을 유숙하게 되었는데,이 집에는 금봉이라는 과년한 딸이 있었다.사립문을 들어서는 박달과 눈길이 마주쳤는데 박달은 금봉의 청초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잃고 말았다.

 

 금봉도 선비 박달의 준수하고 늠늠한 모습에 잠을 이루지 못해 밖에 나가 서성였고 박달도 역시 잠을 못이뤄다가 밖에 나온 금봉을 보게 되었는데 이심전심 마음이 통하여 박달과 금봉은 금새 가까워져서 이튿날이면 곧 떠나려던 박달은 더 묵게 되었다. 

 밤마다 두사람은 만나면서 애정을 키웠고그러면서 박달이 과거에 급제한 후에 함께 혼인을 하기로 굳게 약속했다.그러나 박달은 고갯길을 오르며 한양으로 떠나야할 몸인지라,금봉은 박달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싸리문 앞을 떠나지 못햇다.

 

 한양에 온 박달은 자나깨나 금봉의 생각으로 공부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금봉을 만나고 싶은 시(詩)만을 짓고 있었으니 과장(科場)에 나가서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박달은 과거에 낙방을 하고 박달은 금봉을 볼 낯이 없어 평동에 가지 않았다. 

 

 금봉은 박달을 떠내 보내고는 날이면 날마다 서낭당에서 박달의 장원급제하여 돌아오길 빌고 또 빌었으나 박달은 아무런 소식도 없이 돌아오지 않았다. 금봉은 그래도 서낭당에게 빌기를 그치지 않고 재회의 그날만을 기다렸다.

 

 박달이 떠나간 고갯길에서 박달을 부르며 오르내리던 금봉은 한을 품은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금봉의 장례를 치르고 난 사흘 후에 낙방한 박달은 풀이 죽어돌아왔는데 고개 아래서 금봉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박달은 땅을 치며 목놓아 울었다.

 

 

 울다 지쳐서 얼핏 고갯길을 쳐다본 박달은 금봉이 고갯마루를 향해 너울너울 춤을 추며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박달은 벌떡 일어나 금봉의 뒤를 뛰어가며 금봉아! 금봉아! 금봉의 이름을 부르며 뛰어 고갯마루에서 겨우 금봉은 잡을 수 있었다.

 

 금봉의 환상을 와락 끌어 안았으나 박달은 천길 낭떨어지로 떨어져 죽어버렸다. 이런 애환이 서려있는 박달도령과 금봉낭자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전해진 뒤부터 사람들은 박달이 죽은 고개를 이름하기를 박달재라고 불렀다고 한다. 

옛날 전설같은 이야기를 머리속에 새길때쯤에는 이곳 휴게소에서 음악소리가 구슬프게 들려왔다.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넘는 우리님아 ♬ 물항라 저고리가 굿은비에 젖는구려  ♬왕거미 집을짓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울었소 소리첬소 이가슴이 터지도록♬부엉이 우는 산골 나를두고 가는님아 ♬ 돌아올 기약이나 성황님께 빌고 가소  ♬ 도토리 묵을 싸서 허리춤에 달아주며 ♬ 한사코 우는 구려 박달재에 금봉이야 ♬ .........이곳에는 멀어질때까지 "울고넘은 박달재"노래소리가 뒤쪽으로 아련하게 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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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털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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